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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드림신문 칼럼 -]`새날학교’를 세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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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날
댓글 0건 조회 1,799회 작성일 09-01-20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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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새날학교’를 세운 이유
 
이천영  <새날학교교장·(사)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소장> 

기사 게재일 : 2009-01-19 06:00:00
 
 
 
추운 겨울이다. 늘 겨울이 오면 가슴에 묻어둔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12살부터 21살까지 소년공으로 공단 산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늦은 밤까지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일했다. 너무 힘들어 쉬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해 일하다 쓰러진 적도 있었다. 해고라도 당하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가 막연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병들어 밤늦게까지 남의집 품팔이를 하시는 어머니의 수입이 전부였기에 행여라도 일자리를 잃고 돈을 벌지 못한다면 이 추운 겨울을 어찌보낼까 늘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힘들게 일하는 날보다 일하지 않는 날이 더 마음의 고통이 컸다. 꽃이 피어 세상은 봄을 노래했지만 꽃이 잿빛으로 보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슬퍼보이기도 했다. 어느날 사장님이 불러 말하기를 “회사를 운영할 수 없어 문을 닫아야 한다”며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라고 했다. 이 말에 가슴이 녹아내린 적이 있었다. 어디로 갈 것인지! 마냥 길거리를 헤맸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일자리를 찾아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해고 없는 회사에 근무할 수 있기를. 그러나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기에 안정된 삶을 꾸려갈 회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꿈을 꾸었다. 장사를 해 부자가 되어보겠다고. 그리고 길거리를 헤매는 껌팔이, 우산장사, 신문팔이 등을 하며 삶을 이어갔다. 안정된 수입이 없는 길거리 장사도 쉽지만은 않았다. 결국 소년공으로 다시 산업체로 돌아갔다.

하지만 긴 노동시간과 체불임금으로 가슴앓이 하는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쌓여가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폭동이 일어나면 가세하기로 마음먹고 분노를 안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성격상 그곳도 편한 곳이 아니었다. 세상을 폭동으로 바꾸는 것은 필자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잿빛으로 보이는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주워온 책들을 읽어보며 잃어버린 청소년기를 회복해갔다.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지난 24년동안 교사로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늘 빚진 자의 삶이었다.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결국 돌아갈 곳은 공단이었다. 외국인근로자, 이주여성, 이주아동들이 살아가는 현장이다.

아픈 상처들을 치료하고 위로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요즈음 해고와 체불임금으로 오갈데 없는 외국인근로자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또한 다문화가정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편상 아이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몰아가고 있다. 아내는 집을 나가고 아이를 안고 일할 수는 없기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 3년 전 새날학교를 세웠다. 고아원 겸 교육기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박광태 광주시장을 비롯해 김후진 시의원, 안순일 시교육감, 전갑길 광산구청장님 관심 속에 새날학교가 광산구 삼도로 이전했다.

하지만 텅빈 교실들을 채워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시민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이천영 <새날학교교장·(사)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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